바로가기菁丁 金晉均교수를 추도함
당신이 간 길, 역사의 강이 되어
강 만 길 상지대 총장
청정! 우리가 유명을 달리하고 당신을 추모하는 글을 쓰게 된 이 현실이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9순 노모와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좋은 벗들과 아끼던 제자들을 두고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 우람한 모습과 넉넉한 마음씨를 다시는 대할 수 없게 되었다니 회자정리나 생자필멸이 아무리 거역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정말 안타깝고 원통하기조차 합니다.
목민심서를 번역하면서 맺어진 우리의 우정이 어느새 30년이 되었군요. 벗들이 지켜본 당신의 고난과 영광의 길은 군사독재 아래서의 크리스찬아카데미사건 뒷바라지로 시작되어 ‘해직교수’로, 그리고 장례위원회가 명정에서 밝힌 대로 ‘민중의 스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유족들의 슬픈 모습에 가슴이 메어지지만, 그 많은 조문객에서 거인으로서의 당신의 삶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청정! ‘해직교수’ 시절 전국의 명산을 두루 찾았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언제나 대열의 제일 후미에서 모든 뒤처리를 감당하는 자상한 살림꾼이었습니다. 지리산을 좋아해서 종주를 여러 번 했지요. 언젠가 산 속에서 태풍을 만나 흠씬 젖은 몸으로 유서 깊은 당신의 처가에 들려 폐를 끼치기도 하고요. 이런 일들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추억거리가 되고 말았다니 다산연구회 벗들의 당신 그리움이 한층 더해지기만 합니다.
대부분의 ‘해직교수’들이 학교로 돌아간 후에는 양심적 지식인으로 사는데 한정되었지만, 청정! 당신은 계속 민주화운동 및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제 할 일을 다해 왔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의 책임을 맞고 민주노총지도위원 등을 맡으면서 한편으로 제 세계관 및 역사관을 뚜렷하게 또 날카롭게 세워가기 시작했습니다. 현장 참여 자체가 학문의 선진화 및 첨예화를 가져오는 전형적인 예를 당신에게서 볼 수 있었습니다.
청정! 당신은 참으로 심지 깊고 가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반민주가 보수를 사칭하고 진보가 불온이나 불측으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진보가 곧 양심이요 정의요 평화요 나아가서 관용이나 포용이기도 함을 몸으로 보여준 사람이 당신이었습니다.
우리의 짧은 근대학문사에서는 아직 지성사가 성립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만이 정리된 사상사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이 일치된 학문 업적을 중심으로 지성사가 엮어지는 날 ‘한국의 사회과학과 학문의 과제’, ‘21세기 진보운동의 기획’등 당신의 업적은 그 뚜렷한 봉오리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청정! 인간의 자연수명이 길어진 지금 20년 이상 앞당겨 당신을 잃은 것은 민족사회의 장래를 위해 크나큰 손실이며 그래서 우리의 슬픔이 더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뿌려놓은 학문과 실천의 씨앗은 도도한 역사의 강을 이루고 말 것입니다. 남은 우리 모두 그 진리를 믿으면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고이 잠드소서.
